한민족의 노래, 세계의 아리랑
아리랑은 한국인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민요이자 정체성의 상징이다. 특정 작곡가나 작사자가 만든 노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대를 거쳐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어온 아리랑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감성을 품고 있다. 강원도 정선, 전라남도 진도, 경상남도 밀양 등지에는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아리랑이 지금까지도 생생히 전해져 온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이 노래는 단순한 민요를 넘어, 고난과 슬픔, 기쁨과 희망을 함께 나눈 한민족 공동체의 집단 기억이자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아리랑의 기원과 시대를 아우른 기록들 왕도 즐겨 듣던 서민의 노래 아리랑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에도 이미 널리 불렸던 기록이 전한다.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고종이 밤마다 배우를 불러 아리랑타령을 즐겨 들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는 아리랑이 이미 궁중과 민간에서 폭넓게 향유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다. 당시에도 다양한 아리랑이 존재했으며, 그 우열을 논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는 점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온 대중성과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해외에서 기록된 한국의 민요 1896년,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는 잡지 『Korea Repository』에 아리랑을 영문 가사와 서양음계로 채보하여 소개하였다. 그는 아리랑을 "조선인에게 쌀과 같다"고 표현하며, 한국인이 언제 어디서나 부를 수 있는 노래로 소개했다. 이는 아리랑이 단순한 유행가가 아닌, 시대와 세대를 넘어 삶과 함께하는 민요였음을 세계에 알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부터 아리랑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결합된 노래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영화와 함께한 민족의 아픔과 희망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1926년 나운규가 제작한 영화 <아리랑>은 민족의 정서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주제곡으로 삽입된 아리랑은 전국적으로 퍼지며 대중화되었다. 영화는 식민지 조선의 고단한 현실과 민중의 분노, 애환을 담고 있었고, 그 속에서 울려 퍼진 아리랑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