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교통수단, 가마 이야기
오늘날에는 자동차와 전철, 비행기처럼 빠르고 편리한 교통수단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사람이나 물건을 옮길 수단이 매우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바퀴 달린 수레가 있긴 했지만, 험한 지형에서는 오히려 사람이 들고 다니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가마'입니다.
가마는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작은 집처럼 생긴 구조물로, 앞뒤에서 사람이 들거나 멜빵으로 메고 이동시켰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가마의 종류가 정해져 있었고, 궁중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다양한 가마의 종류와 쓰임, 구조, 문화적 의미 등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조선 시대의 교통수단, 가마 이야기 |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 1910년대 가마를 타고 외출하는 귀부인_채색엽서_조선풍속, CC BY
1. 가마란 무엇인가요?
가마의 기본 구조와 작동 방식
가마는 작고 닫힌 방처럼 생긴 구조물입니다. 안에는 한 사람이 들어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바닥 아래에는 '가마채'라고 불리는 긴 막대기 두 개가 앞뒤로 달려 있습니다. 이 막대기를 두 사람 혹은 네 사람이 양쪽에서 어깨에 메고 이동하는 방식입니다. 간단한 것 같지만, 균형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으며, 가마꾼들의 숙련도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안에 탄 사람은 창을 통해 밖을 볼 수도 있고, 천으로 된 주렴이나 문을 닫고 안쪽을 가릴 수도 있었습니다.
가마의 역할과 필요성
가마는 단순한 이동수단 그 이상이었습니다. 왕족이나 귀족들이 먼 거리를 편히 이동하기 위한 도구였고, 신분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길이 울퉁불퉁하고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조선 사회에서, 가마는 고위층이 이동할 때 피로를 덜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또한 혼례, 장례, 궁중 행사 등 중요한 의례에서도 가마는 핵심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현대의 리무진이나 국빈 전용차처럼, 위엄과 격식을 갖춘 교통수단이었던 것입니다.
2. 왕과 공주가 타던 가마
연과 덩의 차이
연은 왕이 타는 가마로, 가마 중에서도 가장 장식이 화려했습니다. 가마의 앞쪽과 옆쪽에는 주렴이 드리워져 있어 바깥에서 안이 보이지 않았고, 위에는 비늘 모양의 천이 겹겹이 덮여 있어 장식성과 위엄을 동시에 갖추었습니다. 채라고 부르는 긴 막대기가 가마 아래에 붙어 있어, 많은 인원이 들고 이동했습니다.
덩은 공주나 옹주가 타던 가마입니다. 겉모양은 연과 비슷하지만, 장식의 화려함에서는 약간 차이가 있었습니다. 연보다 조금 작고, 이동 시에는 연과 마찬가지로 많은 인원이 필요했습니다. 이 두 가마는 왕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동 수단이었습니다.
왕실 의식에 사용된 용정자와 채여
왕실의 보물이나 문서를 옮길 때도 특별한 가마가 사용되었습니다. '용정자'는 나라의 금보나 옥책 같은 귀중한 물건을 옮길 때 사용된 가마였습니다. 사람 대신 물건을 위한 가마였지만, 연못 위에 정자를 띄운 것처럼 정교하고 장엄한 형태를 갖췄습니다. 또 '채여'는 왕실 의식 때 사용되었으며, 보통 남여와 비슷한 구조였지만 장식이 더 화려했고, 귀중한 물건을 실어 나를 때 사용되었습니다.
3. 양반과 관리가 사용한 가마
초헌 – 관리들이 타던 수레
초헌은 종2품 이상의 고위 관리가 사용한 이동 수단입니다. 외바퀴 수레 형태로, 가마라기보다는 의자가 달린 수레에 가까웠습니다. 앞에 길게 뻗은 막대기에 한 사람이 끌고 뒤에서 밀어주면 움직이는 구조였습니다. 천장을 따로 덮지 않았기 때문에 꾸밈은 없었지만, 관리의 품위를 지키는 이동수단이었습니다. 비가 오거나 해가 쨍한 날에는 사용이 불편했지만, 비교적 짧은 거리의 이동에 적합했습니다.
남여 – 간단하고 실용적인 가마
남여는 주로 포장이나 덮개가 없는 간단한 가마 형태였습니다. 의자 비슷한 형태에 아래에 두 개의 가마채를 끼워 사람이 들고 이동했습니다. 장식이 거의 없고 크기도 작았기 때문에, 일반 사대부 집안 여성들이 외출할 때 이용했습니다. 특히 신분은 높지만 왕실은 아닌 여성들이 많이 사용한 가마였습니다. 덮개가 없기 때문에 시야는 좋았지만, 비나 햇빛을 막기에는 다소 불편한 구조였습니다.
4. 민간에서 사용한 다양한 가마
혼례용 사인교
사인교는 혼례 때 신부를 태우는 데 사용된 가마입니다. '사인'이라는 이름처럼 네 명의 사람이 메는 가마였고, 앞뒤에 각각 두 명씩 배치되었습니다. 이 가마는 신부의 첫 외출이자 가장 중요한 날에 사용되는 만큼, 색감과 장식이 화려하고 밝았습니다. 실내가 좁고 어두워서 신부는 안에서 창을 통해 바깥을 살짝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신부가 가마를 타고 오는 모습을 보며 축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삿갓가마 – 장례의 상징
삿갓가마는 초상집에서 상제가 타고 움직일 때 사용한 가마입니다. 일반 가마와는 달리 흰색 천으로 가장자리를 둘렀고, 위에는 커다란 삿갓처럼 생긴 덮개를 얹었습니다. 이 형태는 죽음을 상징하는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고인의 가족이 조용히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특히 시골 지역에서는 여전히 상여 대신 삿갓가마의 전통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5. 사람이 아니라 물건을 나르던 가마
교여 – 물건 운반 전용 가마
교여는 사람이 타지 않고 물건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든 가마입니다. 구조는 일반 가마와 유사하지만 내부에 사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왕실이나 궁중에서 특별한 물품을 이동시킬 때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동할 때에는 네 명이 들거나 두 명이 앞뒤에서 메기도 했습니다. 외형은 단순하지만, 내용물은 매우 귀중한 것이 많아 엄중한 경비와 함께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무개갸자 – 들것에 가까운 구조
무개갸자는 음식물이나 제사 음식을 나를 때 사용된 구조물입니다. 윗부분에 덮개가 없고, 가마채만 연결된 구조로 되어 있어 들것처럼 생겼습니다. 간단한 구조지만 두 사람이 메야 할 정도로 무게가 나가기도 했습니다. 가마보다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물품을 신속하게 이동시키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큰 제사나 궁중 행사에서 식재료나 제기류를 옮기는 데 많이 쓰였습니다.
가마가 남긴 이동의 역사
가마는 단순히 사람을 실어 나르는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신분, 의식, 예절, 의전 등 많은 상징이 가마에 담겨 있었습니다. 왕이 타는 연부터 신부가 타는 사인교, 음식을 나르는 무개갸자까지, 각 가마는 그 목적에 맞게 다양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거리에서 가마를 볼 수는 없지만, 전통 혼례나 궁중 문화 체험행사에서는 종종 재현되고 있습니다. 또한 가마를 통해 우리는 옛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이동 문화, 사회적 계급의 상징을 함께 배울 수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교통수단이지만, 가마는 조선 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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