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해시계 앙부일구, 세종이 만든 시간을 나누는 과학 유산

우리가 시계를 보며 하루를 계획하는 건 지금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예전에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기 어려웠어요. 특히 조선 시대 백성들에게는 낮 시간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어요. 밤에는 물시계가 있었지만, 해가 떠 있을 때는 대충 짐작으로 시간을 알아야 했지요.

그래서 세종대왕은 낮 시간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앙부일귀'라는 해시계를 만들었어요. 앙부일귀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솥'이란 뜻인데, 그 모양이 진짜 솥처럼 생겼어요. 이 시계는 길가나 시장에 설치되어 백성들도 쉽게 볼 수 있었고, 누구나 해 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알 수 있었지요. 과학을 특별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했던 세종의 생각이 담긴 훌륭한 발명이었어요.


조선의 해시계 앙부일귀, 세종이 만든 시간을 나누는 과학 유산
조선의 해시계 앙부일귀, 세종이 만든 시간을 나누는 과학 유산




조선, 시간을 재기 시작하다


앙부일귀는 왜 만들었을까?

세종대왕은 1434년에 '낮 시간도 모두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해시계를 만들게 했어요. 밤에는 자격루 같은 물시계가 있어서 시각을 알 수 있었지만,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기준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백성들도 쉽게 볼 수 있는 해시계를 거리에 설치했어요.

앙부일귀는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해시계였어요. 반구 모양의 시계판 안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바늘(영침)을 꽂고, 해의 그림자가 가리키는 선을 따라 시간을 알 수 있었어요. 이 시계는 궁궐뿐 아니라 시장이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도 놓였어요.


글 모르는 사람도 쉽게 알 수 있었어요

세종대왕은 앙부일귀에 시간 눈금과 함께 열두 동물(12지신) 그림도 새겼어요. 그래서 글자를 모르는 사람도 어느 동물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닿는지를 보고 시간을 알 수 있었지요. 예를 들어 '토끼' 그림에 그림자가 닿으면 지금은 토끼 시각이라는 뜻이에요.

이처럼 앙부일귀는 누구나 시간을 알 수 있도록 만든 공공 해시계였어요. 세종대왕은 과학이 특별한 사람들만 쓰는 것이 아니라, 백성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시계를 만든 과학과 예술


그림자만으로 시간을 알 수 있어요

앙부일귀는 해 그림자를 이용해서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예요. 조선시대 사람들은 해가 뜨고 지는 높이와 위치가 계절마다 달라진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시계판 안에 선을 여러 개 그어서 해의 위치에 따라 어느 선에 그림자가 닿는지를 보고 시간을 알았어요.

12개의 선은 각각 시간을 나타내고, 가로로 그어진 선은 계절을 나타냈어요. 정오에는 그림자가 가운데로 오고, 아침이면 왼쪽, 오후엔 오른쪽으로 그림자가 이동했어요. 지금 우리가 쓰는 시계 방향(시계바늘이 도는 방향)도 바로 이 해시계에서 나온 거예요.


아름다운 시계, 정교한 기술

앙부일귀는 단지 시간을 알리는 기계가 아니었어요. 시계판에는 은으로 선을 새기는 '은입사'라는 기술이 사용되었고, 받침대는 연꽃무늬 등 아름다운 장식이 있었어요. 재료도 다양해서 청동, 대리석, 상아로도 만들었지요.

특히 나중에는 손바닥만한 작은 앙부일귀도 만들어졌어요. 어떤 것은 나침반도 함께 붙어 있었고, 왕실뿐 아니라 중국에까지 알려질 만큼 유명했어요. 이처럼 앙부일귀는 조선 과학기술과 예술이 만나서 만들어낸 귀한 발명이었어요.




시간을 바꾼 시계, 도시를 바꾼 기술


서울의 거리에도 시계가 있었어요

서울의 혜정교 근처에는 앙부일귀가 설치된 장소가 있었고, 이곳을 '일영대'라고 불렀어요. 그 주변 지역도 일영대계, 일영방 같은 이름으로 불릴 정도였지요. 사람들은 거기서 시간을 확인하고 약속도 잡았고, 시장도 그 시간에 맞춰 열렸어요.

궁궐 앞에는 세 번 종이 울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 시계 덕분에 정확한 시간에 종을 울릴 수 있었어요. 시간이 정해지고, 모두가 그 시간에 맞춰 움직이게 되면서 조선의 도시는 더 질서 있게 움직일 수 있었어요.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시계까지

조선 후기에는 강이오라는 사람이 만든 손바닥만한 작은 앙부일귀가 있었어요. 상아나 대리석으로 만든 이 작은 시계는 나침반도 함께 달려 있었고, 아주 정교하게 만들었어요. 이런 시계는 왕이나 양반이 들고 다닐 수 있었고, 중국에서도 그 기술을 칭찬했지요.

예전에는 시간이 나라와 관리들의 것이었지만, 점점 시간이 개인의 것이 되어갔어요. 조선은 공공 시계에서 개인 시계로 넘어가는 길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예요.




누구나 시간을 알 수 있는 나라


앙부일귀는 조선의 과학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주는 발명품이에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시계가 특별한 사람들만 쓰는 게 아니라, 백성들도 쉽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이에요.

세종대왕은 시간을 왕이나 관리만 알게 하지 않았어요. 모두가 시간에 맞춰 하루를 계획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시계를 거리마다 설치했어요. 지금은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알 수 있지만, 그 시작에는 세종대왕의 따뜻한 과학정신이 있었던 거예요.

서울 곳곳에 복원된 앙부일귀를 보면,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정밀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과학이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소중한 생각도 함께 배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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