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표준 자, 경신척 – 백성을 위한 과학의 자국

우리는 일상에서 자로 길이를 재고, 저울로 무게를 달며, 컵으로 물을 잽니다. 이처럼 정확한 기준이 있어야 옷을 만들거나 집을 지을 때 실수가 없겠지요. 그런데 만약 누군가는 짧은 자를 쓰고, 다른 사람은 긴 자를 쓴다면 공정한 거래는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모두가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 정확한 '기준'을 만들려고 했어요.

조선 시대의 영조 임금은 1740년에 '경신척'이라는 자를 만들었어요. 이 자는 단순히 길이를 재는 도구가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똑같이 사용하는 길이의 기준이었지요. 경신척을 만든 사람은 최천약이라는 훌륭한 기술자였고, 그는 조선에서 아주 유명한 장인이었답니다.

이 경신척은 지금도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28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이 자를 통해 우리는 조선의 과학과, 백성을 생각한 임금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요.


조선의 표준 자, 경신척 – 백성을 위한 과학의 자국
조선의 표준 자, 경신척 – 백성을 위한 과학의 자국






세종과 영조, 기준을 세우다


세종대왕: 다섯 개의 자를 만들다

조선의 세종대왕은 백성의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다섯 가지 기준 자를 만들었어요. 자마다 쓰임이 달랐답니다.

  • 황종척: 악기를 만들 때 사용했어요. 음을 맞추기 위해 꼭 필요했어요.

  • 주척: 하늘을 관측하거나 제사를 준비할 때 사용했어요.

  • 영조척: 건물을 지을 때 사용했어요.

  • 예기척: 왕실에서 사용하는 그릇이나 제사 도구를 만들 때 사용했어요.

  • 포백척: 옷을 만들거나, 땅을 재는 데 썼어요.

세종대왕은 이 자들을 실제로 만들어 보고, 나라 곳곳에 보냈어요. 그래서 백성들이 똑같은 기준으로 물건을 만들거나 세금을 계산할 수 있었죠.


영조 임금: 경신척을 만들다

세종 때 만든 자들이 오래되어 낡고 없어지자, 영조 임금은 자를 새로 만들기로 해요. 바로 '경신척'이에요. 당시 높은 벼슬을 한 유척기가 “세종이 만든 자가 삼척에 있다”고 알려주자, 영조는 기술자인 최천약에게 새 자를 만들라고 해요.

이 자는 단순히 하나의 자가 아니라, 세종 때 만든 다섯 자를 하나로 합친 특별한 자예요. 영조는 이 자를 전국의 관리들에게 나누어주며, 백성들이 공정한 기준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경신척, 어떤 자였을까?


경신척은 놋쇠(구리+아연+주석+납)로 만들어졌고, 길이는 약 24.6cm예요. 네모난 막대처럼 생겼고, 네 면에는 각각 다른 자가 새겨져 있어요.

  • 첫 번째 면에는 예기척과 주척

  • 두 번째 면에는 포백척

  • 세 번째 면에는 영조척

  • 네 번째 면에는 황종척

각 자는 '반척', 즉 절반 길이만 새겨져 있었고, 눈금도 아주 정밀하게 그려졌어요. 조선 사람들은 10분이 1촌, 10촌이 1척이라는 10진법을 사용했어요. 지금 우리가 쓰는 미터 단위는 아니지만, 그들만의 정확한 계산법이 있었던 거예요.

경신척을 만든 재료인 놋쇠는 자를 정밀하게 만들고 오랫동안 써도 잘 닳지 않아서 과학적으로도 아주 좋은 선택이었어요.

그리고 과학자들은 실제 경신척을 현대의 레이저 장비로 분석해서 그 길이와 성분, 눈금의 정밀함을 확인했어요. 조사 결과, 경신척은 정말로 조선 시대 기술로는 최고 수준의 정확함을 갖춘 자였다고 해요. 단순한 눈금 자가 아니라, 수백 년을 지나도 가치가 있는 과학 유산이라는 말이지요.



함께 만든 자, 실학자와 장인의 협업


경신척은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실학자 유형원이 "세종의 자가 삼척에 있다"는 기록을 남겼고, 유척기가 이 사실을 바탕으로 영조에게 보고했어요. 그다음엔 장인 최천약이 실제로 자를 만든 거예요.

이렇게 학자와 기술자가 함께 협력해 만든 자, 그것이 바로 경신척이에요. 이 자를 만드는 과정은 『승정원일기』라는 옛 기록에도 자세히 나와 있어요. 자를 만들자고 논의한 날, 어떤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었는지, 자가 완성된 후 어떻게 검사했는지까지 꼼꼼히 적혀 있어요.

또한 이 자는 조선의 발명품 중 하나인 측우기를 만들 때도 사용됐어요. 빗물의 양을 정확하게 재기 위해서는 정확한 자가 필요했거든요. 그러니 경신척은 단순한 자가 아니라, 다른 과학 도구를 만들 때도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표준은 모두를 위한 약속


백성을 위한 기준

그 당시엔 관리들마다 자기만의 자를 들고 다니면서 세금을 걷거나 장터에서 물건 값을 정했어요. 그러면 어떤 사람은 손해를 보고, 어떤 사람은 이득을 보게 되었지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조는 모든 자를 똑같이 만들기로 한 거예요.

경신척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용되었고, 1902년 고종 때까지 이어졌어요. 그러다 세계적으로 통일된 기준인 미터법이 도입되면서 새로운 기준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하지만 경신척은 우리 조상들이 만든 소중한 과학 유산으로 지금까지도 그 가치가 인정되고 있어요.


지금도 이어지는 기준의 중요성

오늘날에는 빛이 진공에서 움직이는 속도를 기준으로 1미터를 정해요. 그만큼 과학 기술이 발전했지만, 모두가 똑같은 기준을 지키자는 마음은 조선 시대와 다르지 않아요. 지금도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 때나, 학교에서 길이를 잴 때나, 기준은 꼭 필요하거든요.

경신척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줘요. 과학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기준은 모두가 공평하게 살아가기 위한 약속이라는 것이죠.



과학은 모두를 위한 것이에요

경신척은 단순한 자가 아니에요. 그것은 조선 시대의 과학과, 백성을 위한 임금의 마음, 그리고 뛰어난 장인의 솜씨가 함께 만든 결과예요. 누구나 똑같은 기준으로 생활하게 하려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과학의 시작이에요.

영조와 최천약, 실학자들의 노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줄자, 자, 자판기 컵, 주전자 눈금, 그 모든 기준은 경신척처럼 우리 생활을 편리하고 공평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학교에서 자를 들고 선을 그을 때, "옛날에는 경신척 같은 자로 기준을 만들었구나" 생각해 보면 더 의미 있게 느껴질 거예요. 과학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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